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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 - 방현석
 Asia  | 2009·04·29 11:59 | HIT : 598 | VOTE : 92 |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  

전직 대통령과 그 아들을 둘러싼 일로 소란스럽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황사처럼 나라를 뒤덮고 있다. 의혹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국민들은 이미 정치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충분히 절망하고 있다. 불신과 혐오 대신 믿음과 희망을 안겨주는 정치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구 선생은 43세에 첫 아들 인을 얻었다. 앞의 세 딸을 모두 여의고 늦게 얻은 아들이라 더 애틋했을 것이다. 김인이 중경에서 폐병으로 쓰러진 것은 해방을 눈앞에 둔 1945년 3월이었다. 당시 중국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폐병에 걸리면 미군이 가지고 들어온 주사약을 구해 썼다. 주변에서는 김구에게 그 주사약을 구해 아들에게 맞히라고 했다. 그러나 김구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목숨을 같이한 동지들도 맞지 못한 것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맞힐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의 큰 아들 김인은 특효약으로 알려진 주사 한 번 맞아보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아까운 청춘이었다.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두 살인 동생 신과 함께 할머니 곽낙원 여사의 손에서 자란 그는 김구를 도와 상해에서 비밀활동을 전개한 다부진 청년이었다.

이 일로 인해 김구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기도 한 며느리 안미생과 잠시 관계가 소원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왜 시아버지 김구가 섭섭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김구가 가슴 속으로 흘린 피눈물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구는 두 번째 감옥 생활을 하며 백범이라는 호를 지었다. 백정처럼 미천하고 낮은 사람으로 살겠다는 결심이었다. 쉽고 편할 때 원칙을 내세우며 떠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 때 원칙을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구 주변에 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청년들이 모여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믿고 목숨을 나눌 수 있는 지도자가 김구였다. 윤봉길이 훙커우 공원으로 떠나기 전에 자신의 회중시계를 김구와 바꾼 이야기는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다.

"선생님, 바꾸시죠. 제 시계는 어제 6원을 주고 산 새 것이고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 낡은 것입니다. 제게는 한 시간밖에 더 소용이 없습니다."

조국에 목숨을 바치기로 한 젊은이들이 마지막 가진 것 하나까지도 맡기고 싶은 지도자가 김구였다. 적진으로 향하는 윤봉길과 작별인사를 하는 김구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뒷날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것은 일본국왕에게 폭탄을 투척했던 이봉창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나석주의 경우는 또 어떤가. 1925년 나석주는 자신이 입던 옷을 저당 잡혀 고기와 야채를 마련, 김구의 쉰 살 생일상을 차리게 했다. 김구가 한사코 자신의 생일을 감추며 기념하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회갑 잔치도 못해드렸는데 어떻게 내 생일을 기념하겠나."

적 앞에서는 용감하기 그지없었지만 동지에게는 한없이 따뜻했던 나석주 의사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김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일생에서 받은 가장 영광스러운 대접을 잊지 않겠네. 그러나 내 생일을 기념하는 일을 다시 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 후 김구는 자기의 생일을 기념하는 대신 나석주의 삶을 기념했다. 나석주는 이듬해인 1926년 국내에 잠입하여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죽었다.

김구는 자신을 믿고 적진으로 몸을 던졌던 젊은 동지들의 믿음을 죽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김구는 물질과 힘에 대한 맹종을 마지막까지 경계했다. 그가 첫 번째도,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소원했던 완전히 독립된 나라는 자유가 넘치고 문화가 꽃피는 나라였다.

"우리의 경제력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국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경제적 부가 아니다.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이미 50년 전에 이렇게 단언하며 김구가 남긴 경고가 새삼스럽다.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국제신문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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