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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작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 고영직
 Asia  | 2007·10·26 11:29 | HIT : 1,357 | VOTE : 227 |
‘용감한 작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중국 차오원쉬엔과 베트남 응웬옥뜨의 경우


고영직(문학평론가, 베트남을이해하려는젊은작가들의모임 대표)


차오원쉬엔(53)과 응웬옥뜨(31). 최근에 중국과 베트남을 각각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다. 차오원쉬엔[曺文軒]의 『청동해바라기』(사계절)와 응웬옥뜨(Nguyen Ngoc Tu)의  『끝없는 벌판』(아시아)이 그것이다. 차오원쉬엔은 『빨간 기와』라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이고, 응웬옥뜨는 베트남 독서계에 ‘응웬옥뜨 신드롬’을 낳은 베트남의 신세대 여성작가이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내내 몰입의 독서 체험을 마음껏 누리면서 중국과 베트남의 ‘상처와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은 아직껏 묵직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저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언급한 ‘낯선 공기를 마시는 희열’이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국민작가 반열에 오른 차오원쉬엔의 『청동해바라기』의 근저에는 문혁 10년의 상처가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이른바 상흔(傷痕)문학에 해당하지만,  상흔문학에 대한 우리의 견고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숙수(熟手)의 솜씨를 뽐낸다. 물론 이 작품에서 문혁 10년은 철저히 외삽(外揷)된 방식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벙어리 소년 ‘청동’과 고아 소녀 ‘해바라기’의 삶과 사랑을 통해 차오원쉬엔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복화술사(複話術士)의 글쓰기 전략을 구사한다. 미처 발화되지 못했지만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려는 이 작가의 강렬한 표현충동을 행간에서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벙어리 소년 ‘청동’이 작품 결말에서 마침내 말문이 트인다는 설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청동해바라기』의 이러한 작품 구성은 아마도 문혁 10년에 대한 대중들의 억압되고 잠재된 표현 욕망을 표출하려는 작가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혁 당시 지청(知靑) 세대에 속했던 차오원쉬엔의 텍스트에는 그들 세대가 경험했던 착종된 자기 정체성 또한 표출되어 있는 것 같다. 중국문학에 관한 문외한이지만, 나는 그 이유가 차오원쉬엔이 문혁 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차오원쉬엔의 글쓰기는 지배 ‘체제’와 글쓰기 ‘제도’라는 시스템에 대한 자기 성찰이 더 요청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른바 ‘관리되는 저항’으로 포섭되리라는 전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배체제의 질서와 글쓰기 제도가 권장하고 유포하는 덕목이 “말하고 즐기되 행동에는 옮기지 말라”라는 슬로건에 집약되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터이다.

베트남의 신세대 여성작가 응웬옥뜨의 『끝없는 벌판』은 오늘의 베트남 사회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산물이다. 응웬옥뜨는 『끝없는 벌판』에서 가난과 관료주의에 대한 매서운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응웬옥뜨는 2006년 3월 자신의 고향인 까마우(Ca Mau)성 사상교육위원회에 소환되어 일종의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출간 이틀 만에 초판본 5천부가 동나고 현재까지 8만부가 넘는 부수가 팔리면서 베트남 독서계에서는 ‘응웬옥뜨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지금, 이곳’ 베트남 사회의 가난과 관료주의라는 리얼(real)한 문제를 응시하려는 응웬옥뜨의 쿨한 글쓰기가 한국문단에 던지는 의미 또한 그래서 더 각별하다. 지난 10월초 [베트남을이해하려는젊은작가들의모임]의 초청으로 방한한 응웬옥뜨는 “나는 인간의 본능과 잠재력에 대해 쓴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국민시인 찜짱은 응웬옥뜨를 ‘용감한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 점은 특히 이 작품에서 민중 위에서 군림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매서운 비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수전 손택은 ‘문학은 자유이다’라고 역설했다.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갈수록 희박해져가는 오늘의 현실이지만, 나는 ‘문학은 자유이다’라는 말은 쉽게 부정되고 모욕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상현실이 실제의 세계를 압도하는 스펙타클의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문학이란 결국 ‘실제(real)의 세계’를 지키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차오원쉬엔과 응웬옥뜨의 소설을 읽으면서 재차 생각하게 된다.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역내의 동아시아 문학 현실에 한국문학이 둔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한국과 동아시아의 독자들은 더 많은 ‘용감한 작가’들이 출현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작품의 교류를 통한 동아시아 역내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상상력의 연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서남포럼 서남통신 NEWS LETTER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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