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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을 남기는 마음
 방현석  | 2006·11·10 01:27 | HIT : 1,139 | VOTE : 205 |
우리 아파트는 서울에서 지은 지 가장 오래된 곳의 하나다.  30여 년 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낡은데다, 지하주차장도 없다. 늦게 들어오면 차 세울 곳이 없어 애를 먹는다.

그래도 나는 이 아파트가 좋다. 특히 지금과 같은 가을에는 그렇다. 무성한 나무들이 물들어가며 만들어내는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청소원과 경비아저씨들이 힘을 합쳐도 결코 쓸어 담을 수 없는 낙엽들을 나는 가을 내 밟고 다닌다.

  이 아파트의 색감은 여느 아파트들처럼 건물들이 주도하지 못한다. 무성한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아파트 단지의 색상을 바꾸어간다.
  
  가을 아파트의 주인공은 은행나무다. 떨어지기 직전의 샛노란 은행잎은 전율적이기까지 하다.
  
  벌써 잎을 떠나보내기 시작한 메타세코이아는 봄 아파트의 주인공이다. 녀석들은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을 준비한다. 내년 봄이 오면, 5층짜리 아파트들보다 훨씬 키가 큰 녀석들은 눈부신 초록으로 아파트를 포위할 것이다.
  
  버즘나무는 여름 아파트의 주인공이다. 녀석들은 부는 바람에 넓은 잎을 펄럭이며 가장 큰 그늘을 만든다.
  
  겨울은? 모든 나무들이 주인공이다. 눈이 오면 어느 나무할 것 없이 하얀 눈꽃을 피운다. 그래도 굳이 겨울 아파트의 주인공을 하나만 꼽으라면 감나무다.
  
  가을이 깊어가며 감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오로지 붉은 감만 매달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감을 따지 않는다.
  오늘,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가까운 산에 다녀온 다음 낙엽을 밟으며 산책을 했다. 아마도 이 가을의 마지막 일요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다면 내일부터 서울의 기온이 급강하할 것이다.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산책길에서 감나무를 보며 자카리아 모함마드의 편지를 떠올렸다. 아랍을 싸움터로 만든 사람들은 뒤로 빠져서 주판알이나 튕기고 있는 동안, 아랍 땅을 피로 물들이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아랍인들이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그의 슬픔과 분노가 떠올랐다.
  
  북한의 핵실험이 있은 뒤, 착잡한 나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받은 그는 답장에서 한국이 아랍과 같은 비극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대지를 전쟁터로 만들지 않을 만큼 성숙해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아마,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우리의 대지를 전쟁터로 만들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성숙된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한 주 전에 이 난에서 자카리아는 한국에서 만났던 까치이야기를 했다. 내가 감나무를 보고 자카리아 모함마드를 떠올렸던 것도 아마 그 까치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까치밥'을 아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뒤뜰에는 대여섯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을이 되어 감을 딸 때면 꼭 몇 알은 남겨두도록 했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까치밥이라고 불렀다.
  
  날 것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마음, 그것을 시인 김남주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노래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자카리아 모함마드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는 시에서 탱크와 폭격을 몰아내었다. 내 시 어디에서도 전차와 무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꽃을 잊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다. 전차를 몰고 와서 우리를 파괴하는 자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감각마저 빼앗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사람이 지녀야 할 마지막 마음을 잊거나 잃지 않아야 사람이다. 이 겨울에 북에서건, 남에서건 누구도 얼어 죽거나 굶어 죽도록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전쟁으로 인간의 생명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전쟁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방현석/소설가

프레시안 200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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