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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안에 머물면서
 방현석  | 2006·12·03 20:08 | HIT : 1,220 | VOTE : 185 |
가난 안에 머물면서
                                                                                                
내가 아는 베트남의 원로 영화인이 있다.  베트남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연꽃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안선 감독, 그는 남부 출신의 영화인이다. 1954년 북으로 올라가서 1964년까지 호치민을 수행하며 촬영을 담당했다.
1957년, 호치민이 세계를 순방하며 외교활동을 펼칠 때의 촬영도 그가 맡았다.
소련과 중국, 북한, 동독과 폴란드, 유고,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마니아 등 11개국을 연쇄 방문하는 호치민의 일정을 매우 빡빡했다. 미리 잡힌 공식일정 만으로도 빠듯한데 민생현장을 둘러보려는 호치민의 요청까지 겹쳐서 수행원들은 매일같이 강행군을 해야 했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모두 녹초가 되었지만 아무도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가장 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연로한 호치민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호치민이 수행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려운 거 없어요?”
호치민과 눈이 마주친 수행원들은 모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가장 나이가 어렸던 안선이 당돌하게 ‘있다’고 했다. 당시 26살로, 막내였던 안선의 예상치 않은 대답에 기자들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모두 당황했다.
“그래. 무엇이 어려워?”
“아저씨가 너무 빨리 걸어서 찍기가 너무 힘들어요.”
안선이 메고 다니는 카메라의 무게만 7kg이었다. 거기에 녹음기와 밧데리를 합하면 10kg가 넘었다. 그런데 호치민은 걸음이 빠르기로 유명했다. 수첩하나만 들고 다니는 신문기자들도 따라잡기 힘든 걸음걸이였다.
“다른 카메라맨은 카메라 한대, 기자는 수첩 하나를 들고 다니면 되지만 전 달라요. 좋은 그림 찍기가 정말 어려워요.”
“내 걸음이 그렇게 빨라?”
“더구나 저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덩치가 산 같은 유럽의 카메라맨들과 몸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조수들도 있는데 전 혼자서 싸워야 합니다.”
수행원들은 당돌하게 대답하는 안선을 질책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수행팀장이었던 팜 응옥 탑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호치민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호치민은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안선이 찍기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신경을 써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가끔 걸음을 멈추며 안선의 위치를 확인하고, 안선이 고개를 끄덕이면 다시 움직였다.
막내인 안선의 당돌한 행동을 호치민이 귀엽게 받아주는 것을 본 수행팀장 팜 응옥 탑이 조용히 안선을 불렀다.
“네가 해야 할 특별한 임무가 하나있다.”
그러면서 팜 응옥 탑은 구두 한 켤레를 꺼냈다.  
“그게 뭔데요?”
“이걸 오늘 밤에 아저씨 방에 몰래가져다 놓고 아저씨의 샌들을 가지고 나오는 거야. 이짓 할 수 있는 놈은 너밖에 없다.”
호치민은 해외순방에 나가면서도 평소의 옷차림과 신발을 고집했다. 수행원들이 신사복을 입고 구두를 신으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나는 패션쇼 하러 가는 게 아니야. 너희들 눈에는 내가 지금 우리 인민들보다 나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팜 응옥 탑이 신발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호치민은 평소에 신던 샌들을 벗지 않았다. 그가 신던 샌들은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신는, 낡은 타이어를 오려서 만든 것이었다.
팜응옥 탑의 사주를 받은 안선은 그날 밤 호치민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살금살금 침대 곁으로 기어가던 그는 호치민의 고함소리에 놀라 도로 기어 나왔다.
“누구냐?”
밤이 더 깊어서 호치민의 방에 다시 들어간 안선은 구두를 놔두고 샌들을 훔쳐나오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아침 안선은 식당에서 호치민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호치민의 발을 살폈다. 구두를 신고 있었다. 빙그레 웃던 그는 호치민과 눈길이 마주치고 말았다.
“짜오, 박(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저씨)”
호치민은 아무 대답도 않고 손가락으로 안선을 가리키고 나서 자신의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지?”
안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가져다 놔.”
그러나 호치민은 그 뒤로 다시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안선이 자는 방에 호치민이 몰래 들어왔다.
중국의 북경에 갔을 때였다. 그날도 밤 11시까지 촬영하고 돌아온 안선은 침대에 눕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자다가 누군가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이 느껴져서 눈을 떴다. 손길의 임자는 호치민이었다.
안선은 잠버릇이 거칠어서 자고 일어나면 이불이 바닥에 떨어져 있기 일쑤였다. 더구나 북경호텔의 이불은 비단이어서 더욱 잘 미끄러져 내렸다. 떨어진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는 호치민을 발견하고 안선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호치민은 안선의 어께를 지그시 누르며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목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가만히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그날 밤 안선은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자신의 친아버지로부터도 받아본 적이 없는 따뜻한 손길의 여운이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 밤으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여든을 눈 앞에 둔 안선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물었다.
“호아저씨는 왜 외국에 나가면서까지 낡은 샌들을 고집했을까요?”  
“왜죠?”
“아저씨는 베트남의 가난한 현실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는 잠시도 인민들의 현실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는 언제나 우리들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어요.”
안선의 카메라에 담긴 호치민은 비록 낡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어떤 외국의 지도자들 보다 커 보였다.
“제가 숨을 거두기 전에는 제 뇌리 속에서 호 아저씨를 결코 지울 수 없을 거예요.”
가난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그 가난 안에 머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는 지도자들은 많지 않았다.
어느새 가을이다. 연탄 한 장의 온기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지도자들의 차갑고 오만한 행태가 가난한 이들이 맞이해야 할 올 겨울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6 연탄나눔운동 소식지]
김미경 마음이 따뜻한 호치민의 이야기....감동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지요...

07·06·26 10:0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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