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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출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2009년 봄호 읽기
| 2009·03·02 13:10 |

계간 아시아 2009년 봄호
특집:아시아 책의 교류
Focus:Exchanges among Asian Books



아시아 출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
Asian Publishing, A Future of Many Things Possible


카리나 A. 볼라스코 Karina Africa Bolasco|Philippines
번역 펍헙에이전시



나는 이 글을 통해 먼저 지난 10년 간 우리 필리핀 출판 산업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겠다. 아울러 업무상 접촉한 아시아 지역 동료들에게서 얻은 한정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현황도 언급하겠다. 또한 필리핀 정부가 ‘국가도서발전위원회(National book development board)’를 통해 어떻게 출판 산업을 지원하고 있는지, 또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는 필리핀의 도서위원회에 해당되는 기구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출판 산업 앞에 놓인 과제들과 가능성들을 살펴보고 출판사들 간의 비지니즈 차원이든 아니면 국가적인 노력의 차원에서든, 공동 협력과 적극적인 교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아울러 현재 아시아 지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런 시도들과 모범적인 사례들을 언급해 보겠다.


배경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페브르와 마르탱은 공저 『책의 도래(In The Coming of the book)』(Paris, 1958, Verso 1976)에서 중국인들이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보다 거의 5백 년이나 앞서 활자 인쇄술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 가지 이유로 대중화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첫째, 그 방법으로는 목판인쇄처럼 필적을 살린 멋진 책을 찍어낼 수가 없었다. 둘째, 중국에서 사용된 액체 잉크의 질로는 금속인쇄가 불가능했다. 셋째,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진흙과 아교로 글자를 만들고 불에 구워 활자 인쇄술의 원리를 발명했던 필승(畢昇)조차도 그 자신이 대장장이에다 연금술사였건만 실험을 더 해 볼 수 없어 기술을 정련하지 못했다.
활자 인쇄술이 완전히 발달한 곳은 한국이었다. 정부가 서적의 유포를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페브르와 마르탱의 글을 인용해 보겠다.

“인쇄술은 13세기 초반 한국에서 처음 사용됐는데,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왕 세종의 장려로 매우 중요해졌다. 세종의 포고문에는 그의 계몽정책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통치하려면 국법을 알리고 책을 퍼트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도리를 알고 악한 성품을 바로 잡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동쪽이 바다에 면해 있고 중국에서 들여오는 책은 그 수가 극히 적다. 목판은 쉽게 닳는 데다 세상의 책들을 목판에 다 새기는 일 또한 어렵다. 그래 청동으로 글자를 만들어 인쇄에 사용하길 바란다. 그러면 더 많은 책을 만들 수 있고 그 이로움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을 백성이 감당하는 건 적절치 않으니, 호조(현재 재무부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행정기구)가 담당할 것이다.’ 이 포고문을 기화로 10만 벌의 청동 활자가 첫 번째로 만들어졌다.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열 가지 서체가 만들어져 국영 인쇄소에 갖춰졌다(김원형, 『한국의 초기 활자』, 서울, 1954). 그러므로 초기에 나온 세 종류의 금속활자, 경자자(庚子字 : 1420)․갑인자(甲寅字 : 1434)․병진자(丙辰字 : 1436)는 유럽 인쇄술보다 앞선 것이었다.” _[76쪽]

그런데 식민주의자들은 책을 다양한 식민지에서 그들의 이익을 밀어붙이는 데 이용했다. 그들은 교육, 과학과 기술, 예술과 문화를 통해 식민지인들의 몸과 마음에 서구의 감성과 상상력을 보급시켰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만 해도 상하이는 비즈니스와 출판의 국제적인 중심지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들어선 뒤 급속히 그 지위를 상실했고 많은 인쇄업자와 출판업자들이 상하이를 떠났다. 대부분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로 이주했지만 더 멀리 태국과 인도네시아, 심지어는 북미와 유럽 호주까지 진출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인 최초의 디아스포라는 아니었지만 출판과 인쇄술에 있어서는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이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아시아에 있는 인쇄소와 출판사 대부분을 중국인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지식과 인쇄된 문자를 존중하는, 수 세기에 걸쳐 누적된 유교적 태도가 있었다. 정작 중국에서는 사라지기 시작한 지 백 년도 더 된 그런 태도를 그들은 이주지의 언어와 문화에 온전히 동화되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대전이 끝난 뒤 출판업은 다시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 이른바 독립된 아시아의 경제 재건을 돕는다는 명목이었다. 그리하여 아시아는 서양 산물의 시장이 되고 함께 공산주의와 싸우는 동맹이 되었다. 지식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유입되었을 뿐 동양에서 서양으로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서양은 세계은행 차관이나 보조금 그리고 특수사업을 통해 그들의 모델에 따라 배우고 가르치게끔 아시아를 광범위하게 훈련시켰다. 사이몬 앤 슈스터, 존 와일리, 애디슨 웨슬리와 맥그로우 힐 같은 미국 출판사들이 극동 지역에 진출해, 가는 곳마다 성공을 거뒀고 롱맨, 맥밀란, 하이네만과 옥스퍼드 대학출판사 같은 영국 출판사들도 미국의 선례를 따르며 아시아의 학교에서 시장 자본주의와 기업가 정신을 설파했다. 그들의 수출 실적은 매년 10퍼센트씩 성장했다.

대학교육을 받은 거의 모든 아시아인들은 원본이든 재판본이든 아니면 번역본이든 간에 서양 책들을 읽는다. 오늘날에도 서양, 특히 미국 출판사는 여전히 전 세계의 지성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다. 전보다 사업이 더 잘되고 있다. 나로서는 아직 세계 금융 위기가 출판사들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래서 앞으로 새로운 합병이 일어날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필리핀 경우에는 식민의 역사 때문에 영어로 된 인쇄 문자와 필리핀 말을 영어로 써놓은 문자 사이에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교육자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필리핀 사람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난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독서란 일반적으로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백년이 넘도록 영어로 가르쳤기 때문에 영어가 늘 더 지배적이고 영향력 있는 언어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서점이 대략 6만 권의 책을 팔면 그 중 85퍼센트가 미국이나 영국 책이고 나머지 15퍼센트만이 국내 서적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도 1980년대에는 3~5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이 이만큼 늘어난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 필리핀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은 『해리포터』나 『목적지향적인 삶(A Purpose-Driven Life)』, 요즘 들어서는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시리즈 같은 그런 책들이 아니라 필리핀 말로 된 포켓판 연애소설이라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그런 책들이 하나같이 텔레비전 드라마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투적인 삼류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런 책들이 수십만 권씩 팔려나가고 매달 열에서 스무 권에 이르는 새로운 연애소설들이 출간된다. 그뿐 아니라 해외 노동자 망을 타고 가장 널리 수출된다. 연애소설을 빼면 필리핀에 다른 책은 없다.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소설 몇 권과 아동용 책들이 예외일 테지만 이런 책들은 두 가지의 언어로 되어 있어 쪽마다 영어와 필리핀 말이 나란히 쓰여 있다. 다른 필리핀 말들로 된 책들은 나오지도 않았다.


출판 산업 진흥과 정부의 역할

온갖 무시무시한 예측들이 난무했지만 인쇄물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시아, 특히 비용이 많이 들어 새로운 기술이 널리 사용되지 못하는 동남아에서는 아직도 책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곳에서 책은 가장 저렴한 사회적 의사소통 수단이자 제일 구하기 쉽고 효과적인 교육 수단이다. 그래서 필리핀뿐 아니라 동남아에서 가장 큰 출판사들은 교과서를 출판하는 회사들이다. 지난 10년 간 필리핀에서 변한 것이 있다면 그런 책들이 팔리는 방식이다. 공립학교에 대는 교과서는 여전히 교육부에 대량 납품하지만 사립학교 교과서는 서점을 통해 팔던 예전 방식을 버리고 전국의 사립학교에 직접 판매되고 배달된다. 전에는 교과서 판매가 서점의 주 수입원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부교재도 교육부가 평가를 하고 구입했다.

이제 인쇄업자나 출판업자는 종이나 잉크, 풀과 같은 인쇄 재료들을 수입할 때 무역부 산하 투자위원회의 인센티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책을 만드는 경우에는 수입 종이에 붙은 30퍼센트의 세금이 5퍼센트로 준다. 이제 필리핀에는 제지 공장이 하나밖에 없다. 수입 종이보다 질이 낮은 종이를 저가에 공급하는 업체지만 독점이다 보니 가격이 제멋대로다. 좀 더 다양한 종이가 수입되고 있고 서지는 회색빛 나는 백지에서 푸르스름한 고급 백지로 대체되었다. CPT(computer-to-plate)와 소규모 책을 인쇄하는 소형 디지털 인쇄기를 구입하면 세금할인에 대부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은행은 책만 가득한 가게를 매력적인 담보물로 보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쟁자들, 특히 연애소설 출판업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교외 지역에는 서점들이 많이 생겼고 계속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으로도 책을 팔고 주문 받아 수입도 해 주는 이 효율적인 서점 체인들은 커피숍에 책도 보게끔 편안한 의자도 갖추고 출판기념회를 주최하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행사도 연다. 또한 서점들은 협력 출판사와 손잡고 책값을 할인해 주는 구식 방법과는 다른 판촉활동을 배우고 있다. 회원에 한해 할인과 특전을 제공하고 책을 기증하면 점수를 주고, 독자와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작가 사인회나 독서 토론회를 개최하며, 독서 클럽 같은 것도 만들고 책 교환 행사도 마련하는 등등의 여러 가지 판촉활동을 한다. 백화점처럼 서점도 출판사들과 같이 일하는 행사 기획자를 고용해 책을 더 많이 팔고자 애를 쓴다. 우리 같은 출판업자들도 머천다이저(상품 전문가)를 고용해 소매점의 재고 조사와 책 진열을 돕는다.

현재 필리핀의 3대 신문사는 월요일마다 책과 예술을 소개하는 증보면을 발행해 전면짜리 비평을 싣는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작가를 초대해 인터뷰를 하고 신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앤빌 출판사는 정보통신기술이 책 읽는 독자를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책의 진정한 협력자임을 입증했다. 첫째, 정보통신기술은 책을 생산하는 형태와 속도를 바꿔놓았다. 이제 이메일 덕분에 세상 저 끝에 살고 있는 저자와도 일할 수 있다. 데스크탑, 포토샵, 그리고 인디자인 덕분에 최고의 레이아웃과 책의 모양을 선택할 수 있다. CTP( computer-to-plate) 인쇄를 하면 거의 종이가 필요 없다. 물론 최종 산물은 종이의 형태지만 말이다. 둘째,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젊은이들 사이에 그리고 온라인 시장을 통해 책 소비를 촉진하는 창의적이면서도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들이 무궁무진해졌다. 절판본도 온라인 판으로 내려 받는 게 가능하고, 주문을 받고 컴퓨터를 이용해 책을 제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작가들은 책을 쓰고 출판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세세한 사연들을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나누게 되었다. 해외거주 작가들을 인터뷰 해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음성을 대중에게 직접 들려줄 수도 있다. 웹사이트에 신간 소식을 올리고 작가 이메일 리스트가 들어 있는 사이트를 통해 출판기념회에 작가를 초대하는 일은 이제 불가결한 일이 되었다. 개인 블로거들이 웹사이트에 멋진 글을 올리고 그것을 책으로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감동적인 장면을 유 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했던 성직자가 작가가 돼, 이제 모두 60대가 된 그 시절의 어린이 합창단원들을 다시 지휘하는 보기 드문 장면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은행이 신용카드 번호를 확인해 줄 수 없어 굉장히 불편하다. 필리핀에서는 모든 신용카드 거래에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책을 전자상거래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책 출판과 광고는 매우 신속하게 이뤄지지만 책을 파는 일은 간단치 않다.

1995년 마침내 출판업자, 인쇄업자, 작가와 편집자, 책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만든 ‘필리핀 도서발전협회(BDAP, The Book Development Association of Philippines)’가 기초한 국가 도서 정책이 법제화되어 최초로 도서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 탄생했다. ‘국가도서발전위원회(National Book Development Board)’라고 명명된 이 교육부 산하의 기관은 교과서를 개발하는 민간 출판업자들에 대한 보상과 당시로서는 2천2백만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있던 공립학교에 교과서를 보급하는 일을 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앞서 도서위원회를 조직했지만 도서 출판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법령(공화국 법안 8047)을 제정한 것은 필리핀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리더십 문제로 휘청거려 얼마 동안은 골칫거리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마침내 이사회가 만들어지고 업무가 배정되었다.

필리핀의 도서 출판 산업은 아주 오랫동안 정부보조를 전혀 받지 못한 채 홀로 버텨왔다. 마르코스 시대에는 교육부 산하 기관이 공립학교의 교과서를 모두 제작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사기가 많이 저하되어 출판계 종사자 수가 격감했다. 기본 교과서를 정부가 제작하는 것은 태국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부가 교과서 제작에 개입함으로써 ‘전국출판연합’에 가입돼 있던 출판업자들 수가 격감했다. 그런데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 번에 1천2백만 권을 대라고 했다. 이는 민간 출판사들로서는 제공할 수 없는 물량이었다.

현재는, 민간 출판사들이 교육부에 입찰가를 제시하면 도서위원회가 입찰 회사들 가운데 종이를 수입할 회사를 선정하고 세금을 완전히 공제하는 일에 가담한다.

도서위원회는 또한 국내 저작권 지원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켜 능력 있는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1억5천만 페소(대략 30억 원 정도)를 지원하게 됐다. 이로써 집필자들은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정직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출판업계와 도서위원회는 모두 미국의 과학 기술서적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 애를 쓰고 있다. 책값이 점점 비싸지는 데다 재판권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런 책들이 우리의 필요에 꼭 부합하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유능한 전문가는 많지만 연구결과를 책으로 저술하는 중요한 일에 전념할 만한 사람은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위원회는 또한 ‘필리핀 도서발전협회’가 지난 29년 동안 매년 개최하는 마닐라 국제도서박람회의 주 후원자이기도 하다. 자카르타 도서박람회만큼이나 오래된 행사다. 올해 박람회는 SMX라는 필리핀의 최신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는데 5일 동안 6만 명이 다녀가 역대 최대 행사로 치러졌다.

언젠가 도서위원회 회장이 마닐라 외곽에 있는 수비크 만의 비과세 지역에 출판도시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출판업자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 분은 분명 한국인들이 여기 파주에 이뤄놓은 업적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다들 알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출판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그런 도시를 세울 정치적인 의지도 재원도 없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 이외에 도서위원회의 다른 활동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디스크에 넣어두었다. 독서 촉진 운동과 출판 산업 능력 구축 사업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아울러 도서 위원회의 비전과 사명 그리고 도서 발전 계획 추진 전략 등도 소개해 두었다.

‘인도 내셔널 북 트러스트(The National Book Trust of India)’는 중앙 정부에서 자금을 받는 반 자치 기구다. 그 기구는 인도어를 타국어로 번역하는 거대한 사업을 후원하고 대학 교재뿐 아니라 타국어로 되어 있지만 같은 그림을 사용하는 아동서적의 출판을 주관한다. 말레이시아의 ‘국립문학원(Dewan Bahasa dan Pustaka)’은 자국어 육성을 위해 말레이어로 번역하는 대규모 사업을 후원한다. 특히 교육용 교재들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 이제는 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도 영어로 가르치기 시작할 것이다. 필리핀의 도서위원회는 출판업 분산 계획의 일환으로 도서박람회와 출판강연회를 마닐라 외곽이나 다른 지방에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미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는 잡지와 신문발행인들이 업종을 다각화해 책도 출판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브루나이에는 모두 적극적인 도서위원회가 있어 국제적인 도서박람회를 조직하거나 자국의 출판 산업을 진작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필리핀의 도서위원회는 이제 교육부에 부속되는 것이 출판업자의 이익 보장과 상충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도서발전협회와 손잡고 무역부로 소속을 옮기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출판업자들이 대규모 필리핀 교민들이 살고 있는 해외로 책을 수출할 수 있는 능률적이고도 효율적인 종합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협력과 협동의 미래

필립 앨트백에 따르면, 90년대 중반 일본의 서적 산업은 그 수준이 아시아에서 단연 최고였다(아트백과 호시노 편찬, 『국제 서적 출판: 백과사전』,  424쪽). 아시아 출판사들은 대체로 이익의 10퍼센트를 서양 서적 번역물에서 얻었다. 앨트백의 주장에 의하면, 아시아에서 서적 출판 산업의 발전상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다. 정치적 자유, 인쇄 기술, 국제적인 기술에 대한 접근용이성, 재정의 건전성, 교육, 정부의 장려도, 저작권 보호, 청렴도 등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조건들을 제대로 갖춰 각 나라 고유의 출판 산업을 활발히 육성해야 한다.

앨트백이 인용한 ‘세계 경쟁력 보고서’(극동 이코노믹 리뷰, 1992년 11월 19일판)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여타 아시아 국가들보다 뇌물이나 부패로부터는 자유롭지만 그곳 언론인과 작가들은 암암리에 행해지는 언론 통제에 대해 불만을 터트린다. 그래서 국내출판보다는 도서무역에 더 힘을 쏟는다.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패는 말레이시아보다 인도가 더 심하지만, 출판 산업은 인도가 훨씬 더 활발하다. 독서인구가 많고 내국 작가들을 장려하기 때문이다.”(같은 곳)

오랜 식민지 상태에 있다가 근대 국가로 나아가면서 고유의 문화를 재해석하는 지역에서는 독자적이고 토착적인 출판사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앨트백은 알고 있다. 책은 국가 발전의 핵심요소다. 정치가들이 대개 이런 자명한 이치를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해 안타깝다. 다른 나라의 사정에 맞춰 제작된 수입 서적에 의존하는 일은 죄악이다. 제작 목적이 우리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은 그 나라 사람들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고유한 사상과 신념 그리고 이상을 반영하는 책들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찌울 책들, 우리의 경우로 이야기 하자면, 필리핀 사람들의 감성을 키울 책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솟아난 필요에 부응하는 책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국의 고유 언어로 책을 출판해야 한다. 언어란 교육의 토대이자 대다수 국민 속에 자리 잡은 국민문화로 들어가는 입구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를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의 이웃들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태초부터 같이 살아온 이들로서 이웃나라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이 비슷하게 들리고 우리의 춤과 음악이 유사하고 직물 문양과 색채 감각이 같고 모두 가족을 굉장히 중시하는 점 등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발견해야만 한다. 만회해야 할 일도 벌충해야 할 일도 많다. 우리는 식민의 역사 때문에 고유의 문화에서 잘려 나와 우리의 문화를 식민주의자들의 문화로 착각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낸 책을 소비하는 시장이 되었다. 이제 그런 역할을 그만 둬야 한다. 현상을 완전히 역전시켜 우리는 우리가 만든 책의 시장이 돼야 한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나는 제안한다. 출판사들끼리 사업상 제휴를 맺고 국가들끼리 협정을 체결해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노력을 함께 해나가자.


공동 배포 방법

이런 발상을 한 것이 내가 처음이 아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급작스런 경기 침체로 아프리카에서는 책이 거의 사라졌다. 이 시기에 ‘책 기근’이나 ‘ 책 기아’ 같은 말이 등장해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들은 아프리카 학문이 점점 주변화 되는 현상을 몹시 우려했다. 1992년 기성이든 새내기든 아프리카의 출판인들을 두루 돕기 위해 조직된 ‘아프리카 출판네트워크(APNET, African Publishers Network)’는 제반문제에 대해 범 아프리카적이고 집단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했다.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는 전문적인 출판인을 훈련시키고 아프리카 밖에서는 ‘아프리카 서적 공동체’라는 서적 배포 단체를 만들었다. 옥스퍼드에 근거를 둔 이 공동체는 아프리카 출판업자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였다. 이 단체는 아프리카 서적의 해외 마케팅을 기획하고 강화해 북쪽 선진국들의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다른 기관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아시아에는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 협력체가 없다. 일차적으로, 각 국가 내에서, 이차적으로, 아시아 지역 내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 나가 북쪽 선진국들에서 일할 수 있는 그런 협력체가 없다. 내가 아는 한, 아시아에는 영어로 된 수준 높은 아시아 책들을 가지고 나가 북쪽 선진국의 도서관이나 서점 그리고 다른 기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통합적이고 든든한 협력체가 없다. 현재 아시아에는 키노쿠니아(Kinokuniya)나 페이지 원(Page One)같은 초대형 서점 체인들이 있다. 이런 서점들은 아시아 내에 있으면서도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제작한 영어로 된 책들은 많이 구비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싱가포르나 홍콩, 인도나 태국 등 우리가 영어로 쓴 훌륭한 책들은 팔지 않는다. 필리핀에 있는 영어서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위에서 말한 3단계별로 일할 수 있는 협력체를 만드는 일은 아주 실제적이고도 기본적인 일이며 실현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런 협력체가 만들어지면 출판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다. 그런 일은 번역이 완벽하게 끝나길 기다리거나 새 책이 쓰여 지길 기다릴 필요도 없이 즉각 실행할 수 있다. 문학, 역사, 민속학, 예술과 문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음식과 요리, 축제나 의례에 속하는 책들은 당장 다른 나라 서점에도 들여놓을 수 있다.

바로 올해 초 마닐라에서 우리 앤빌 출판사는 모회사인 내셔널 서점에 “아시아를 읽자”는 캠페인을 시작하자고 제안을 했다. 내셔널 서점은 104곳의 소매점과 열 곳의 전문서점을 거느린 최대 서점 체인 회사다. 우리는 먼저 싱가포르의 몬순사로부터 책을 수입해 내수용으로 자체 기획해 만든 책들과 같이 전시했다. 싱가포르 책들은 아주 근거리에서 들여왔는데도 미국 책들보다 소매가가 10에서 15퍼센트나 높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싱가포르 출판사의 1회 인쇄 부수가 대체로 미국 보다 다섯 배나 적기 때문이다. 우리 필리핀 책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로 가게 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특별할인을 계획했고 일시적으로 그러는 것일 뿐 일단 그렇게 해 놓으면 시장이 형성될 거라며 몬순사를 설득했다. 그런 특별 할인은 사업상 전략이지 자선행위가 아니다. 한편 다국적 출판사들은 자기네가 아시아 소설이나 아시아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회고록과 전기 등을 출판해 우리한테 팔고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르고 있다. 우리에게 유럽과 미국 소설들을 팔아먹는 것보다 분명 낫기는 하지만 시장에 내놓을 아시아인들과 그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가? 뛰어난 작품에 대한 기준이 아시아 출판업자나 유럽이나 미국 출판업자에게 동일할까?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기준에서도 다른 위대한 일본 작가들보다 책을 만들고 배포하는 데 있어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그게 단지 랜덤하우스가 그렇게 하자고 해서일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출판사인 필리핀 출판사들은 꼼꼼하게 평가해서 독자들을 위해 출판할 만하다는 판단이 서는 책들만 출간한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우리 아시아 지역 안에서 돌아다녀야 하는 책들은 그런 책들이다. 그런 책들이 우리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줄 책들이다.

우리 책들을 아시아를 넘나드는 서점들 서가에 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책을 수출하는 일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을까? 우리 책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에 안 될까? 미국의 출판사 직원들이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서점과 중개상인들에게 자기네 책을 팔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 출판사 역시 떠들썩한 판촉 활동을 벌여 소문을 내고 전 세계에 광고를 하면서 신간 서적을 팔고 기존 서적과 시리즈물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유지한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아시아 책들을 북쪽 선진국들에 파는 문제는 어떻게 할까? 중앙 집중화된 도서 서비스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유럽 같은 북쪽 선진국들의 도서관과 서점들이 어떤 책들을 구할 수 있고 간단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출판업자들이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지 않고도 아시아에서 나온 모든 책을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야 우리는 영어로 된 우리 책들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도서관들에 많이 팔게 되었다. 콸라룸푸르의 두 중개상을 거쳐서 말이다. 책 두 권은 ‘동남아 연구소(Southeast Asian Studies)’가 팔았다. 우리는 싱가포르 국립대학 출판부와 홍콩 대학 출판부와 공동 출판도 했다.

현재 개최되고 있는 도서박람회 수를 보면 아시아의 도서 출판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다. 일 년 내내 박람회가 개최되고 있고 그 성격도 아시아적이고 국제적인 행사로 변하고 있다. 열흘 간 열리는 싱가포르의 9월 도서박람회가 가장 유명하고 고객도 많다. 박람회가 산업협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성공적인 박람회와 그렇지 못한 박람회로 나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필리핀에서도 해마다 5일 동안 도서박람회가 개최되는데 싱가포르 박람회 직후에 열린다. 외국 출판업자들이 마닐라 도서박람회만 참가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맞았다. 지난 9월 박람회가 29회째였는데, 3백 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하고 6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미국과 영국의 거대 출판사 신간들이 총 출동했다는 점에서만 국제적인 박람회였다.

필리핀 도서수출협회는 가능한 한 쿠알라룸푸르에서 방콕까지, 홍콩에서 베이징까지, 대만에서 도쿄까지 아시아에서 열리는 모든 박람회에 꼭 참가하려고 한다. 이제 ‘아시아도서출판연합회(ABPA)’는 모든 아시아 도서박람회에서 많은 매장을 무료로 얻고 회원국 책들을 단체로 전시한다. 그러다 민간 기업들끼리 소규모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판매 독점권이 거래되고 번역권이 팔리고 어떤 책은 수출까지 하게 된다. 도서 박람회는 계속 열려야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 아시아 책들의 입지는 강화되지 못할 것이다.

세 가지 유형의 배급 기법을 연구하다 보면 아프리카 서적 공동체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서점과 출판업자들은 사업상 협정을 맺어야 하지만 전국 도서 산업 협회들 입장에서 협정을 이행하려면 거기에도 일종의 합의와 정치적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협회들이 모여 하나의 아시아 지역 출판인 조직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그런 조직을 만들려고 하면 먼저 내외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협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날 수 있고, 또 누가 나라를 대표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분란이 생길 수도 있다. 국가들 사이에서는 가령 일본이 앞장서면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을 시작하자면 늘 어느 한 국가나 몇몇 국가가 앞장서 연합체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한다.


교육 : 아시아의 기준

과거에 교육은 우리의 정신과 혼을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식민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제는 그와는 정반대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 고유의 역사와 풍부하고 다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한다. 식민주의자들이 오기 전에는 우리도 고유의 문자와 역사가 있는 사회를 이루고 아랍과 인도 그리고 중국과도 왕성한 교류를 하면서 살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다양한 필리핀 민족들과 아시아인들을 위해 새로운 기준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우리 문화를 재해석해야 한다. 특히 우리 필리핀인들은 수백 년 동안이나 식민주의자들로부터 그들이 우리 땅을 발견하고 우리를 문명화하기전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세뇌를 당한 탓에 쌓인 국민적인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아시아 지향적인 문학 작품을 이용해야 한다. 민족의 혼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의 문학 작품을 읽게 되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리상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국민들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 정책 내에서 이런 종류의 재교육을 이뤄내자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필리핀 고등학교 2학년 과정에서처럼, 다른 아시아 국가의 책을 교재에 포함시키는 방법 외에도 소설이나 단편집 같은 문학 작품이나 비소설류의 창의적인 선집을 다른 아시아 국가의 학교나 교육부처에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해 볼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연말 나는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문화 간(across cultures)독서 세미나에 참석했다. 영국 문화원이 주관한 행사였다. 거기서 말레이시아 교육부의 교과과정 개발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지역 중개상을 통해 우리의 청소년 문학 작품 몇 권을 교육부 입찰에 넣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입찰을 통과하는 작품이 한 권이라도 있으면, 그 쪽 중개인은 수천 부를 인쇄하게 될 테고 우리는 재판권을 팔 수 있었다. 올해 중반 우리 책 세 권이 최종 단계까지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좋은 결과가 나오길 빌었다. 그런데 만일 교육부를 통하든 직접 학교를 상대하든 그런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면 이웃나라를 알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과 문학출판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 방문이나 작가 교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작가들보다는 우리 아시아 지역의 작가들을 데려오는 편이 분명 더 쉽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 것이다. 나라마다 있는 예술협회나 위원회가 나서서 강연회나 책 사인회뿐 아니라 체류하면서 집필도 할 수 있는 작가 교환 프로그램을 후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의 문학 교수 자리도 개방해 아시아 작가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주제에 따라 문학 작품을 선정해 공동출판을 하면 1회 인쇄부수를 최대로 늘릴 수 있고 동시에 책값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싱가포르 시인들과 함께 영어로 된 사랑 시 선집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우리는 『사랑은 모든 것을(Love Gathers All)』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그 시집을 싱가포르에서 찍어 우리 몫을 필리핀에서 판매했다. 기술에서부터 비즈니스, 가족의 가치에서부터 특별한 우정, 통치에서부터 정치학, 예술에서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일반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주제는 많다. 이런 주제들을 활용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학계는 컨퍼런스와 세미나를 통해 지적이고 학문적인 교류를 해왔고 대학 출판사나 학구적인 출판사들을 통해 수많은 책을 출간했다. 이런 책들 가운데 북미나 유럽, 호주의 도서관으로 들어간 책들도 있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해년마다 ‘동남아시아 도서관회의(CONSAL)’를 열었던 아시아의 도서관들은 그런 책들을 사서 비치하지 않았다. ‘국제아시아연구협회(IAAS)’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나라별로 옮겨 다니며 개최되는 데 참석자가 최소 1천6백여 명에 이르고 연사들은 50 내지 60개의 소위원회에서 논문을 발표한다. 이 모든 일이 삼일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바로 그런 곳이 책의 재료와 주제가 넘쳐나는 보고다. 삼년 전부터는 범주 별로 최고의 책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런 상은 수상작들의 판매를 끌어올렸다. 그들이 발간한 회보 또한 신간 광고와 비평을 매 쪽마다 싣고 있다.

번역 프로그램도 도요타 기금 사업 모델에 비춰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최종 산물의 상업적 생존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출판업자와 연결되어야지 그냥 도서관이나 다른 기관들에 기증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대사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화 교류를 위해 그런 프로그램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번역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도서위원회나 문화원들이 나서서 지속적으로 노력할 일이다.
우리 앤빌 출판사는 ‘한국문학번역원(KLTI)’과 손잡고 번역원이 선정한 한국 작가 소설 열두 편을 영어판으로 출간했다. 『한국의 읽자: 12편의 현대 소설』은 2년에 걸쳐 완성됐고 아시아 매거진 편집장인 방현석 씨가 필리핀 작가 동맹 앞에서 기조연설을 했던 작가회의 자리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그 회의의 주제는 “말을 사고팔아 세상을 탐색하자(Trading Words, Tracing Worlds)”였다. 아시아 매거진은 한국의 주의를 다른 아시아 문학으로 이끌었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훌륭한 시도다.
『한국의 읽자: 12편의 현대 소설』의 출판기념회는 11월 중에 한국의 한 레스토랑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다. 현재 한국거주자와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출판기념회에 초대할 만한 이들의 이메일 주소를 수집하고 있다. 오늘날 필리핀에 있는 외국인들 10명 가운데 7명이 한국인이다. 지난 2006년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에 온 한국 관광객 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관광객보다 많은 숫자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재외 한국인들은 대부분 남한 출신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민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가 7번째다.

영화와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는 지역 무역에서 앞서 있다. 그래서 우리 필리핀의 일반 대중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나 일본과 태국의 공포영화 그리고 대만 노래를 대단히 많이 접하고 있다. ‘치앙게(tiangge, 필리핀의 벼룩시장 형태의 조립식 소규모 가게)’에서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옷과 신발과 패션 액세서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음식 산업은 초콜릿에서부터 소스까지, 마닐라에서부터 중국까지 좀 더 널리 퍼져 있다. 이런 현상은 좋든 싫든 그리고 굳이 국가 협정에 의지할 필요도 없이 아시아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책의 경우는 아직 아니다. 분명코, 우리는 그 일을 해내야 한다.

*이 글은 지면에 한계가 있어 계간지에는 영문으로만 수록하였습니다. 웹페이지를 통해서 열람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인쇄하여 열람하시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수일 이내로 PDF 파일을 첨부할 예정이오니 이용 바랍니다.

  
  계간 《아시아》2010. 봄 호 발간 (16호)  ASIA 10·03·16 4825
  계간《아시아》2009년 봄호 발간 임박  ASIA 09·02·23 6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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