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Asia Publishers
Home | E-mail | Editorial Room
English

04/23 2021년 심훈문학상 ...
08/21 2017 심훈문학대상, ...
05/24 2017 제21회 심훈...
06/10 2015 심훈문학상 (계...
05/27 2015 아시아 도서목...


너무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
 임부경  | 2006·06·23 22:57 | HIT : 1,590 | VOTE : 307 |
** 울타리 속 아이들
나는 아시아가 어디인지 잘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지리를 배우지 못한 내게, 세계 각국 나라는 주워들은 풍문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와 나라의 크기가 똑 같다. 베트남이고 인도네시아고 몽골이고,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땅 크기가 다 고만고만하리라는 생각. 결국 미국이 지구상에서 제일 큰 나라고 유럽이 두 번째로 크다고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은 원리다. 아시아는 그저 한국과 함께 말 그대로 제 3세계로 물러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내가 작가 지망생이기에 더 웃지 못 할 현실이기도 하다. 내게 과외를 받는 아이는 광복의 해를 모른다. 중학교 1학년인 그 아이는 지나간 일제시대가 무얼 의미하는지 모른다. 오늘날의 일본과 우리가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통일을 모른다. 나는 열다섯 살의 그 아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 둘 다 울타리 밖은 전혀 알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나는 열다섯 살의 그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었다. 일제시대에 관해, 그리고 광복에 대해 아는 것만큼 이야기 해 줬을 때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로 나를 당황케 했던 그 아이는 계간『아시아』를 읽은 후에도 그러했다. 아이의 질문이 많아져 수업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충분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우매한 선생이 되었다. 하지만 계간지를 다 읽고 난 아이의 반응은 명쾌했다.
“이런 거 또 있어요?”
『아시아』도 창간호인데, 이런 책이 또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있다손 치더라도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더 많은 것을 함께 배우고 싶었지만, 우매한 선생에 이어 가르침을 줄 책도 없는 셈이었다. 이래저래 한계가 뻔히 보였던 수업이다. 그래도 이 아이는 언젠가는 청출어람이 되어 나를 꾸짖을지도 모른다.『아시아』라도 읽고 자랄 수 있기에 지금-오늘을 사는 작가 지망생인 나에게 세상을 왜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냐고 야단칠지도 모를 아이다. 부끄러운 마음에 수업에 집중하라고 괜히 아이만 야단쳤다.

** 울타리와 울타리 사이
계간『아시아』에는 국내 작가 김지하에서부터 일본 작가 오다 마코토, 중국 작가 모옌, 인도네시아의 프라무디아(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베트남의 작가이자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이름 바오 닌, 여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몽골의 작가들, 그리고 팔레스테인의 작가들이 있다.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이늠」과 「물결의 비밀」이 있고,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사랑하는 아버지」,「말릴 수 없구나」가 있다. 감각적인 느낌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 L.울찌툭스와 하재영은 셈이 날 정도로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되었다. 두 편의 에세이와 왕쭝첸의 글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할 공부가 되어 주었다. 가만 보니 울타리 밖은 너무 넓다.
넓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가지 못한 길이 많을 테고,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 분명 즐거운 일이다. 각자의 울타리 속에서 튀어나온 듯 한 작가들이 계간『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울타리 밖, 이 넓은 공간에 모여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울타리 속의 사람들이 모두 튀어 나와 이 넓은 공간에 마주서길 바라는지 그들의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다. 전쟁터에서 살았으며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하는 바오 닌, “인류가 그 어떤 이유로도 더 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는 에카 부디안타, “나도 너무 떠밀린다면”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협박(?)하는 알리 제인, “작가의 작품에는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 정신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밀도 있는 세심한 관찰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지하.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가 그다지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도 울타리에 매달려 겨우 구경이나 하고 있는 내게, 빨리 울타리를 넘어서라고 엉덩짝을 걷어차 줄 것 같다.
전쟁과 평화, 정치와 문학에 대해 소리 높이는 이들이 있어 울타리 넘어 넓은 세상은 풍요롭고, 또한 자유롭다.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풍요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아끼지도, 자신들이 넘어온 울타리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계간『아시아』라는 울타리 밖 세상을 공유하는 모든 문학인들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 울타리를 열어주는 목동
『아시아』에 실린 단편 소설과 시들은 작가의 이름을 지운다면 어느 나라의 작가 작품인지 알 길이 없다. 특히 단편소설에 실린 네 편의 소설과 시「사랑하는 아버지」「계수나무 그녀」「말릴 수 없구나」「복잡하게 의연하게 구는 자여, 어리석은 인간이여」와 같은 작품은 국적의 의미를 상실한다. 기실 어느 나라 작가의 작품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작품이 하고 있는 몫은 무엇일까.
지금-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놓칠 수가 없다.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빼놓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범아시아적인 주제로 발돋움하기에 앞서 자신이 서 있는 세상과 사람들을 똑바로 보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범주를 차지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작품들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울타리 속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도 닮아 있음을 느낀다. ‘다름’을 가지고 만나는 우리에게 ‘같음’을 선사하는 것, 그리고 ‘같음’을 통해 ‘다름’이 기분 좋은 것이 되는. 그러기에 이들의 작품은 소중하다.
지금 ‘나’의 위치는 하재영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다. 옆집 사람은 모르면서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는 만난다. 섹스는 해도 소통은 없다. L.울찌툭스의 작품에서처럼 수족관 속 금붕어의 모습이기도 하다. 매일 똑같은 아침을 맞이하는 변하지 못하는 일상이 팔레스타인에도 존재함을 오수연은 말하고 있다. 그래도 자연을 노래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노래하는 이들이 있어 고맙다. 기꺼이 또 다른 세상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어 즐겁다.
계간『아시아』에서 이들의 작품은 만화경 속의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다. 서로 닮음 꼴들이 대칭적으로, 각각 다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그래서 만화경 속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결코 거울 속에 갇히는 세계가 아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비춰주고 새로운 형상을 제시하는 그들의 세계는 울타리 밖에서의 만남을 위한 전초전일 뿐이다. 울타리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늘 바쁜 목동처럼 그들의 역할 역시 바쁘다. 좀 더 정확한 현대인의 모습을, 좀 더 다양한 고민의 장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가능성을 선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목동은 양을 살찌우기 위해 방목할 필요가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방목을 위해 울타리를 치워주는 목동의 자리.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더욱 값지다.

** 6월 6일,『아시아』의 리뷰를 쓰다
오늘은 현충일(The Memorial Day)이다.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과제를 하고 인터넷을 하고 저녁이면 술을 마시러 나간다. 짧은 습작을 시도하지만 국토방위는 없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월드컵 스케줄에 맞추어져 있다. 예전과 같은 의도적인 행사도 시청률에 밀려 나가떨어진 것이다. 8일 동안 들고 다녔던『아시아』는 하루아침에 의미가 없어진다. 신기한 일이다. 무지를 깨닫고 어리석음에 부끄러워하던 일은 8일 동안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오늘도 과외가 있다. 열다섯 살 아이에게 오늘은 미국에 대해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국어 과외이지만 30분 정도 투자하는 것은 늘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에서 겨우 8일을 투자하는 것처럼, 그것은 자위에 지나지 않는다. 서글픈 일이다.
반레의 작품을 읽다가 우연히「아시아 작가들의 연대 가능성」이라는 짧은 좌담을 읽은 적이 있다.『아시아』에서도 만날 수 있는 자카리아 모하메드와 K.칠라자브, 이라크의 작가 하미드 무사와 베트남의 작가 투이 드엉이 한국의 소설가 방현석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시아에 사는 나에게 문제의식을 느끼게 해 준 글이자 작가로서 또 하나의 과제를 부여한 글이었다. 왜 아시아여야 하는지, 아시아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막 말문이 트인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만남이 왜 중요한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좌담 글이었다. 하지만 이 글 역시도『아시아』를 읽기 전까지 잊고 있었다. 읽는 순간뿐이었던 셈이다. 내 기억 속에서 한 쪽으로 제쳐 놓은 것들 중 하나였다. 영화『약속』에 나오는 전도연의 대사처럼, 내 마음 속에서 그를 제쳐두는 것 또한 그에 대한 배신일지도 모른다. “세계에 대한 서글픈 인식”(오다 마코토의 글)을 제쳐두고 산다는 것은, 글을 쓰려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배신일지도 모른다.
계간『아시아』가 기억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는 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런 시의 거처는 되고 싶듯이, 작가는 기억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되새김질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울타리 밖에서라면 울타리 안의 모든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울타리 안에서라면 최소한 나 스스로에 대한 각성을 위해서라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아시아』라는 멍석이 깔렸으니 한판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된다.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마당”(오수연의 글)으로 내려서기만 하면 된다.『아시아』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단초가 되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족을 잠시 달자면 책이 예뻐서, 오렌지색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이런 책이 한국에서 시작할 수 있어서 기뻤다. 각주가 잘 못 표기된 곳, 정서법에 맞지 않는 표기, 오타 등이 발견되어 아쉽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편집에 관해서는 보는 눈이 짧아 언급을 생략한다.
  
  magazine of Asian literature를 읽고…….  김성용 06·06·26 1603
  ASIA 창간에 감사를.  이하나 06·06·23 1355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주)아시아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445 / 전화 031-944-5058 / 팩스 031-955-7956 / 전자우편 bookasia@hanmail.net
Copyright (C) since 2006 Asia Publishers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