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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현실 인식과 지표
 손수지  | 2006·06·27 20:13 | HIT : 1,644 | VOTE : 272 |

  한국 문학의 위기다.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는다. 이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이미 글이 아닌 수많은 매체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문학이 소멸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가는 것에서는 다 까닭이 있다. 문학은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못할지라도 세계를 앞서서 인식할 수 있다. 바른 인식은 결국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는 다른 의미로 다가 온 계간지였다. 그 몇 가지 이유는

1. 동북아시아로 쏠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이미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나도 최근에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의 세계는 선진국을 기반으로한 서방 세계와 우리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 그 이상이 아니었다. 『창작과 비평』을 선두로 최근 문예지 기획 기사에서 자주 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대부분 중국과 일본 등 우리의 세계에 범주에 크게 떠나지 않는 아시아가 대부분이고, 간혹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문제가 많지만 폭력과 억압, 독재에서 해방 된 후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환경이나 세계로 쏠리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수많은 급진론자들이 다 환경주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것이 새로운 화두가 될 요지는 충분히 있지만 시선이 편협하고 좁다는 것이 문제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도 세계에 대한 인식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이야기가 더 많다.
  『아시아』는 창간호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나 몽골처럼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인식의 폭에는 없는 나라의 문학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성과인 것 같다.

2. 짧은 서사, 긴 울림

  프라무디아의 단편 「이늠」은 무척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풍토나 가난,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겨내는 이늠의 모습이 인상 깊었고, 비교적 짧은 분향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결은 흐르고」는 무척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큰 서사를 담고 있어서 좋았다. 개개인에 문제에서 벗어나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인류애가 느껴졌다. 짧은 분량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몇몇 콩트를 읽으며 재기발랄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문학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도 콩트를 보기가 힘든 편이다. 작가의 신변잡기적인 에세이와 콩트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콩트도 서사 문학의 한 지평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나 역시도 어느새 원고지 70~80매 분량의 단편 소설의 형식에 익숙해져 버렸다. 외국에는 콩트를 전문으로 쓰는 작가들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계간지에서는 장편 연재나 단편 소설 외에 콩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으니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하겠다.
  굳이 콩트가 아니더라도 비교적 분량이나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소설들이라 명명할만한 작품들도 실려 있었다. 소설이 이래야 한다는 편견이 어느 새 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런 고정관념에 반기를 드는 작품들이 있어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3. 좀 더 많은 작품들, 그리고 비평

  이번 호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아무래도 문학을 조망해볼만한 글이 적지 않았나, 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해 조망해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함을 생각해보면 창간호에 이런 점을 요구하기란 약간 무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통 계간지들에는 특집 기사나 기획으로 ‘문학’에 관한 것들을 많이 싣는다. 문학 수첩 여름호를 보니 ‘대학의 문학 교육’에 관한 기획이 실려 있었다. 기획으로 현재 아시아 문학 전반을 조망해볼 수 있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국경을 사이에 두고도 차이도 많고 조류도 다르겠지만 아시아 전반의 기류가 아닌 문학의 풍토에 대해서도 굉장히 궁금해졌다.
  국적은 다르지만 비슷한 문학관과 세계를 보이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싣고 리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아시아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비평이나 기획 기사가 실린다면 양질의 문예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4. 현실 참여, 어떤 현실에 참여하느냐.

  문학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룸과 동시에 세계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개인은 결국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들이 겪는 고민이란 결국 세계와 맞부딪혀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문학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작품 속 화자가 느끼는 세계의 범위가 지극히 좁다는 것에 있다. 문학이 자꾸 배부른 자들의 배부른 소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가 어떤 방향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호에 데뷔한 신인 하재영의 작품은 가능성과 아쉬움을 동시에 띠고 있었다. 「달팽이」는 문제의식면에서는 요즘 작가들과 다른 면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야기 부분에서는 기존 작가의 틀을 못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호족의 이야기나 소극적이고 관계를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기존의 소설에서 너무 많이 써먹은 것들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사회의 문제를 삽입해서 성격을 달리하려고 하고 있지만 식상한 스토리에 매몰되어 버린 아쉬움이 있었다.
  먹고 살기 편해졌다고 해서 많은 문제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해결된 듯 보일 뿐 세계는 자꾸 썩어가고 있다. 게다가 예전에는 피해자의 입장이던 우리가 현재는 가해자로 변해 우리보다 못한 약소국가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다. 세상을 넓게보는 눈이 필요하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이 더 쉽게 우민화되어 버린다. 생각 없이 달려있는 댓글들을 보면서 암담한 생각이 드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보다 더 편향되고 단절된 세계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는 새로운 의미의 계간지임에 분명했다. 세계의 폭을 넓혀주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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