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작가들 금기에 도전
‘ASIA’ 봄호, 낙태·근친상간 등 소재작 특집
터키 영화 ‘욜’(일마즈 귀니 감독, 1982년작)을 본 사람은 눈밭에서 펼쳐지는‘명예 살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명예 살인은 간통이나 정조 상실 등으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여성이 남편 등 가족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통이 있는 터키에서 아버지와 딸이 사랑과 섹스를 나누는 근친상간 소설이 여성 작가에 의해 나왔다면 어떤 해석을 해야 할까.
한글과 영어로 아시아권의 문학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계간지 ‘ASIA’(아시아·사진)는 올봄호에 ‘펜으로 홀로서기-아시아 여성작가’특집을 마련했다. 여기 실린 터키 작가 ？勳？이시귀젤(34)의 소설 ‘어느 오후’는 여자 주인공이 16세때부터 친아버지와 성관계를 맺어오면서 겉으로는 사랑이라고 우기지만, 무의식 속에서 정신적 내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다뤘다. 아시아 편집위원회는 “이 작품의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문예잡지로서는 이례적으로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를 붙여서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을 읽어보면, 성관계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얼핏 도발적으로 느껴지지만, 기저에 흐르는 분위기는 인간이 맞서기 힘든 세상의 모순에 대한 슬픔이다.
이번 특집에 실린 몽골 작가 울찌툭스(35)의 단편 ‘여자’는 낙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한국 작가 부희령(43)씨의 단편 ‘꽃’은 여성 성기를 소재로 여성이 자신의 몸에 관해 주체적으로 자각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아시아권 여성 작가들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성역과 금기로 여겨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키스탄 작가 사하르 칼리파(66)는 산문 ‘나, 내 삶, 내 글’을 통해 아랍권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눈물과 한숨뿐인 출생, 쓸모없고 가치없는 성”이었다고 회고하면서도 “나는 (아랍 여성의 삶을 증언하는 작가로서)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특집엔 파키스탄 키시와드 나히드, 싱가포르 령류걱과 한국의 유안진, 김선우 시인의 시 작품도 함께 실렸다. 전승희 ‘ASIA’편집위원은 “아시아권 현대사의 아픈 체험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혼돈 속에서도 차분함을 견지하며 온갖 어려움과 싸워 이겨내는 아시아 여성들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몸짓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04/23 
